진변 칼럼

법 없이도 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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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그 국민이 법을 가장 잘 지키는 나라로 알고 있는 독일에서는 법(das Recht)이라는 말이 동시에 정의요, 소송이요, 판결이요, 권리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독일인들에게는 법이라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소송을 통한 판결에 의하여 지켜주는 정의로운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프랑스나 영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권리’를 의미하는 영어 ‘right’는 ‘옳은’ 이라는 뜻의 형용사이기도 하고, ‘정의’를 의미하는 ‘justice’는 동시에 ‘재판’,‘판사’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독일의 대표적인 법철학자인 예링은 그의 대표작인 ‘권리를 위한 투쟁’이라는 책에서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그것을 위한 수단은 투쟁이다. 권리추구자의 권리주장은 그 자신의 인격주장이다. 권리를 위한 투쟁은 자기 자신에 대한 권리자의 의무다. 권리주장은 사회공동체의 의무다. 권리를 위한 투쟁이익은 사법, 사적생활뿐만 아니라 국법, 국민생활에 까지 미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서양에서는 권리자가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인격의 표현이요, 이것은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의무가 되고, 반대로 자신의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인격적으로도 문제이며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와 같은 서양인의 법의식을 나타내는 말중 몇을 더 소개하면 ‘법은 이성(理性)에 의해 발전되고 더욱 발전된 경험을 향해 계속적으로 응용된 경험이다(R. 파운드)’, ‘법률은 정직한 것을 명령하며, 그와 반대되는 것을 금하는 신의 계시에서 끌어낸 정확한 원칙에 지나지 않는다(키케로)’ 등이 있다. 결국 서양인들은 전통적으로 법을 개인의 권리를 실현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보았고 이렇게 법을 통한 개인의 권리의 실현이야말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첩경을 보와 온 것이다.
우리사회의 전통적인 법의식은 위와 같은 서양인의 법의식과는 판이하였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법에 대한 관점의 일단을 드러내는 말 중에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그 동안 우리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평가되면 그 사람은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로서 남에게 절대로 해를 끼치지 않으며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통용되어 왔다.
 
이 말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법 좋아하네’, ‘송사를 하면 3대가 망한다’라는 말 등과 더불어 우리사회가 그 동안 분쟁해결의 수단으로 법에 의존하는 태도를 경원시하였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통치의 차원에 까지 확대되는데 공자는 ‘법령으로서 인도하고 형법으로써 다스린다면 백성은 법망을 뚫고 형벌을 피함을 수치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린다면 백성은 수치를 알아 바른 길로 나아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는 법이 개인의 분쟁해결 뿐만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데 있어서도 최우선적으로 기댈만한 수단은 아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이는 법을 통하여 자신의 권리를 실현하는 것이 바로 정의라고 생각하는 서양인의 법의식과는 극히 대조적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우리사회에서는 아직도 분쟁이 있을 때 먼저 타협과 대화로 해결하려고 하고 그래도 정 해결되지 않을 때 마음이 상하여 대화의 장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하는 말이 ‘법대로 하겠다’라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사회도 급속한 산업화과정에서 발생한 제반 법률적 분쟁해결의 필요성에 따라 수많은 법들이 제정과 개정, 폐지의 과정을 거치면서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2005년 3월 현재 시행되고 있는 법령의 수는 헌법, 법률 1,106개, 대통령령 1,451개를 포함하여 모두 3,886개이며 이는 1985년의 경우 2,943개와  비교하면 완연히 증가추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대사회에는 크게 보면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좁게 보면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법의 지배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명시적이던 묵시적이던 우리는 법의 테두리 내에서 생활하고 있는 셈이고 언제든지  우리가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던 우리는 법을 준수하던지 또는 위반하던지 하는 과정을 매일 겪는 셈이 된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현대사회에서는, 급속한 법률수요의 증가에 따라 판사, 검사, 변호사( 1980년의 법조인 수는 판사 624명, 검사 397명, 변호사 1,551명으로 모두 2,572명에 불과하던 것이 2005년 3월 현재 판사 1,946명, 검사 1,555명, 변호사 7,459명을 합하여 모두 10,960명으로 4배이상 증가하였음)와 같이 법을 생계수단으로 삼아 ‘법 없으면 못살 사람’과 범법자(2004년 1년간 형사입건되어 전국검찰청에 피의자로 접수된 사람이 260만명 정도 됨)와 같이 위법을 생계수단으로 삼아 ‘법 없어야 살 사람’은 점차 그 수가 많아지고 있는 반면 말 그대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은 없고 모두 법과 더불어 살아가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주변에 마치 공기와도 같이 보이지 않지만 널리 퍼져있으면서 우리 생활에 직ㆍ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이 법에 대하여 보다 깊은 관심을 가져 법과 친해질 필요가 있고(‘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 한다’, ‘법률의 부지는 용서받지 못 한다’라는 로마법 이래의 법언(法諺)이 서양의 법체계를 수용한 우리사회에서도 지금 당장 그대로 유효하다!), 따라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은 우리의 전통적 법의식의 일단을 표현했던 과거의 언어로 그 의미가 퇴색되어가고 있다고 하겠다. 결국 지금은 법을 모르고는 선량한 사람이 되기도 쉽지 않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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