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변 칼럼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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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미스런 일로 언론에 종종 등장하는 법조인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거물 법조브로커 Y모씨와 돈거래를 하여 검찰수사를 받은 모 판사가 사표를 제출하였다고 한다. 필자는 같은 법조인으로서 누구보다도 엄정한 자기관리를 하여야 할 판사가 이 같은 추문에 휩싸여 명예롭지 못한 퇴직을 하게 된데 대하여 안타까운 심정이다.
 
몇 달 전의 일이지만 강원도 지방에 근무하는 어느 판사는 술에 취한 채 택시를 타고 오다가 택시기사가 잠시 전화를 하는 사이에 그 택시를 몰고 질주하다가 음주운전 및 절도 등의 현행범으로 체포된 적도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만 검찰고위간부가 독직사건 등으로 구속되는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고, 검사가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경우도 있었다. 일반인들의 경우라면 뉴스거리도 아닌 이러한 사건들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것은 판사 및 검사 등 법조인들에 대한 일반의 기대가 아직도 크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씁쓸한 마음 금할 수 없다.
 
 
통영지청 검사시절의 에피소우드
필자가 통영지청 검사로 재직하던 시절, 고향을 관할하는 검찰청 검사의 애로사항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중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특정사건의 결과, 특히 선고를 며칠 앞둔 구속피고인이 석방될 것인지를 미리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법조인 사이에는 그러한 부탁은 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라 당연히 거절하지만, ‘맨날 사고만 치는 막내아들놈이 이번에 과연 나올 수 있는지 제발 알아 봐 달라’며 부모님 집에까지 찾아와 간절하게 부탁하면 예의가 아닌 줄을 알면서도 성의라도 보여야 했다.
 
마침 당시 통영지원에 고등학교, 대학교, 사법연수원 동기 판사들이 수명 근무하고 있어, 그들이 담당하는 사건에 한하여 차도 한잔 할 겸 판사실에 방문하여 슬며시 해당 사건에 대해 빙빙 돌려가며 선고결과를 미리 알아 내 보려고 애써 보았다. 그러나 모두 허사였다. 판사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기록을 잘 검토하고 있으니, 차나 한잔하고 가라(喫茶去)’는 것이었다. 그렇게 퇴짜 맞고 며칠 뒤 선고내용을 보면 당초 예상과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다. 그 선고내용을 접하면 ‘뻔한 것을 두고 미리 좀 알려주면 뭐 어때서’라는 어리석은 생각이 잠시 스치기도 했지만, 곧 바로 ‘역시 판사는 판사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면서 판사들의 위와 같은 한결같은 대답이 긴 여운을 남기며 필자의 심금을 울렸다. 그렇다!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
 
 
법관, 정의의 최종적인 선언자
법원장을 거쳐 대법관의 임기를 마치고 갓 개업한 변호사가 새파란 후배법관에게 90도로 깍듯이 인사를 하자, 후배법관이 민망하여 ‘대법관님, 왜 이러십니까’하며 겸연쩍어 했더니 ‘나는 자네에게 절을 한 것이 아니라 자네가 입고 있는 법복에 대한 존경의 표시를 한 것이라네’라고 했다는 말을 필자는 사법연수생 시절 들은 바 있다. 법복을 입고 법대(法臺)에 앉아 재판을 주재하는 판사는 절에서 예불을 올리는 스님, 성당에서 미사를 올리는 신부처럼 절대적 권위를 지닌 존재이다.
 
영혼의 문제로 고통을 호소하는 중생들이 성직자에 기대는 것처럼, 법률적 문제로 고통 받는 당사자들은 법관에게 정의의 여신을 대신하여 사법절차에서 그들의 문제를 정의롭게 해결 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은 법정에서 판사의 일거수 일투족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응시하며 이를 자신의 사건과 관련지어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때로는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판사가 실제로 공평무사하고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그러한 태도를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판사의 언행은 태산보다 무거워야 하는데 그에 관한 가장 훌륭한 준칙이 바로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법언(法諺)이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법언의 의미
이는 무엇보다 판사는 판결주문을 법정에서 판결선고시에 비로소 고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판결주문은 당사자들의 법률적 운명을 가름하는 것이며, 따라서 판결선고를 위하여 법복을 입고 법대로 올라서는 판사는 그들에게는 하늘과 같은 존재이다.
 
경우에 따라 당사자들에게는 생사를 가름하는 전부일 수 있는 판결주문이 판사의 입을 통하여 사전에 유출된다면 어느 당사자가 그 판결에 대하여 승복할 수 있겠는가! 그 어떤 사건이라도 피해자와 가해자, 원고와 피고, 피고인과 검사, 검사와 변호사, 변호사와 변호사, 유사사건 당사자 등 수많은 이해관계인이 있고, 이들이 알게 모르게 엄중히 지켜보고 있는데 말이다! 십 수년 전 필자가 고향을 관할하는 검찰청 검사로서 고향 어른들의 부탁에 못 이겨 개인적으로 잘 아는 판사에게 찾아가 판결주문을 사전에 알아내려고 한 것이 법조인으로서 얼마나 무모하고 황당한 것인지, 당시에 동기 검사의 청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정도를 걸어준 동기 판사들이 얼마나 고맙고도 자랑스러운지 지금도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당시에 필자의 어리석은 청에 못 이겨, 뻔한 내용이지만 판결주문을 사전에 알려주었다면, 그래서 필자가 이를 당사자의 부모에게 중계하여 주었다면 당시에 는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바로 그 부탁을 했던 사람들로부터도 ‘검사와 판사가 이래도 되나’라는 불신을 받았을 것이 뻔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십 수년이 지나 변호사가 된 지금도 필자는 그 판사들을 외우(畏友)로서, 그리고 훌륭한 법관으로서 여전히 존경하고 있다. 역시 판사는 판결로만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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