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변 칼럼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2)

관리자 0 1126
판사는 여자를 남자로 만들 수도 있다
며칠 전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에서 강간살인죄로 사형이 구형된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 피고인은 살해된 여인과 같은 연립주택에 산다는 이유로 용의선상에 올라 경찰로부터 2개월 이상 내사를 받는 과정에서 수차 범행을 부인 하다가 결국 자백하여 경찰에 구속되었다.
 
검찰에 송치된 날에도 자백하였다가 검찰 2회 피의자 신문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부인하였다. 범행현장에는 피고인의 음모가 떨어져 있는 등 정황증거가 상당히 있었고, 법정에서도 범행당일 피해자의 집 안방에서 돈 몇 천원을 훔친 사실은 인정하였다. 검찰은 피고인이 강간 후 피해자를 살해하고 그것도 모자라 피해자의 유두를 자르는 등 범행이 잔인한 점, 증거가 명백한데도 수사기관에서는 범행을 자백하였다가 법정에서 범행을 부인하는 등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며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피고인의 수사기관에서의 자백은 신빙성이 없고 달리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에 대하여 검찰은 즉각 항소하였고 상급심 판결절차가 남아 있어 이 사건이  장차 어떻게 귀결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검찰이 사형을 구형한 사건에 대하여 검찰의견대로 사형을 선고할 수도 있고, 본건과 같이 무죄를 선고할 수도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은 오직 법관뿐이다. 이와 같이 법관은 경우에 따라 한 인간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 있는 하늘의 권한을 대신하는 것이다. 심지어 트랜스젠더 하리수의 경우와 같이 호적상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도 바꿀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법관이다.
 
 
독일의 어느 닭 도둑 재판 이야기 
독일 어느 도시의 시청공무원이 남의 닭장에 들어가 닭 두 마리를 훔쳐 나오다가 순찰 중이던 경찰관에게 현장에서 적발되어 야간건조물침입절도죄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독일의 형사실무상 이와 같은 범죄에 대하여는 원칙적으로 징역형을 선고하고, 다만 피고인이 음주만취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벌금형을 선고하는 것이 관례이고, 공무원은 집행유예 이상을 선고받으면 파면 당하게 되어 있었다.
 
그 공무원은 범행을 순순히 자백하면서 당시 술에 만취되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이니 공무원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벌금형을 선고 해 달라고 변호인을 통하여 간청하였다. 수사 및 공판검사도 피고인이 초범으로 20년간 이상 성실히 근무하여 온 점 등 제반정상을 참작하여 피고인이 벌금형을 선고받는데 반대하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검거한 경찰관의 증언이었다. 정직하고 성실한 근무자세로 정평이 나 있는 그 경찰관은 법정에서 “피고인이 체포될 당시 정신이 멀쩡한 상태였다. 비틀거리지도 않았고 똑바른 걸음걸이로 도로를 따라 걸었다.”고 증언한 것이었다.
 
재판장의 판결은 다음과 같다. “본건 범행당시 만취상태였다는 피고인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어 벌금형에 처한다. 왜냐하면 피고인이 닭 두 마리를 훔치려고 손과 발로 기어서 조그만 출구를 통하여 들어간 것이나 옷에 피를 묻힌 것, 야심한 밤에 그러한 행위를 한 것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볼 때 그러한 짓은 오직 지각이 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또한 검거당시 피고인이 멀쩡한 상태였다는 경찰관의 증언 또한 신빙성이 있다. 왜냐하면 술에 만취된 사람이 경찰관에게 발각되면 정신이 말짱해진다는 사실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독일 만하임의 고등검찰관을 지냈던 어느 여검사가 자신이 관여했던 재판 중 가장 감동적이고 인상깊은 것이라고 술회한 내용이다. 피고인의 진술대로 술에 취한 사실을 인정하고, 경찰관의 진술에 따라 정신은 말짱하였다는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재판장은 아주 평범하고도 단순한 ‘경찰관은 무조건 무서운 사람’이라는 보통사람의 생각을 끄집어내고 멋진 판결을 선고한 것이다.
 
 
심판대상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 법관의 최고 덕목
독일의 법철학자 예링은 그의 명저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법은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생동하는 힘이다. 그러므로 정의(正義)의 여신은 한 손에는 권리의 무게를 달 수 있는 저울판과 다른 손에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검(劍)을 쥐고 있는 것이다. 절제를 모르는 검은 하나의 폭력이며 반대로 검을 갖지 못한 절제는 법의 무력(無力)을 뜻한다.
 
즉 이 두 가지는 한 쌍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법의 실현이란 검을 찬 정의의 여신이 검을 사용하는 힘의 저울판을 잘 조정하는 숙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라고 설파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의 여신의 대행자가 바로 법관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법관에게는 법률지식에 정통해야 함은 물론이고, 나아가 모든 인간적인 것을 통찰하는 혜안을 가질 것이 요구된다. 법관은 어떠한 경우에도 엄정한 법의 원칙을 지켜낼 줄 아는 냉정함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자신의 심판대상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를 할 줄 아는 따뜻함도 지녀야 한다.
 
“법대(法臺) 저 아래 피고인석에서 갖은 범죄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자도 나 자신과는 전혀 다른 벌레 같은 존재가 아니라 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하나의 인격체이다. 저 피고인도 집안에서는 나름대로 귀한 자식이고 존경받는 남편이며 먹여 살려야 할 식구들이 딸려 있는 엄연한 가장이다. 내가 형을 정하여 징역을 살려야 하는 저 피고인도 보다 낳은 환경에서 성장하였다면 피고인석에서 재판을 받는 일 만큼은 없었을 것인데...”라고 측은하게 여길 줄 아는 인간적인 배려 말이다! 맹자는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이것은 인의 단서이다(無惻隱之心 非人也, 惻隱之心 仁之端也).”라고 하였거늘 하물며 정의의 여신의 대행자인 법관에 있어서랴!
0 Comments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