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변 칼럼

변호사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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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의 용어가 된 ‘변호사를 산다’라는 말
‘저의 딸이 교통사고를 당해 큰 피해를 입었는데 상대방인 가해자는 변호사를 샀고, 그래서 그런지 가해자는 명백히 잘못이 있는데도 무죄를 주장하면서 합의도 보지 않고 배짱을 부리는데도 구속이 되지 않아 너무 억울하여 저도 변호사를 사려고 찾아 왔습니다’

변호사인 필자가 법률상담을 하면서 종종 황당한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변호사의 면전에서 의뢰인이 아무 거리낌 없이 위와 같이 ‘변호사를 사러왔다’는 말을 할 경우이다. 필자는 이 말을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을 막론하고, 당사자 본인과 그 가족뿐만 아니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루에도 수없이 듣게 된다. 그럴 때마다 ‘변호사는 사는 것이 아니고 선임하는 것’이라고 점잖게 바로잡아 주지만 변호사를 ‘사러온’ 상대방은 별로 공감하는 것 같지 않다.
 
하기야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법조인을 쏟아내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도 공식논문에서 이 표현을 사용하는 마당이고 보면(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발간한 「법률가의 윤리와 책임」에 게재된 ‘왜 「법률가의 윤리와 책임」인가’라는 논문에서 저자 한인섭 교수는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에 관련된 사안에 대하여 유능한 변호사를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라고 쓰고 있다), ‘변호사를 산다’는 이 속된 말은 그야말로 전국민의 용어가 된 셈이다.
 
 
변호사의 사명과 사회적 지위
반면 변호사법에서는 변호사의 역할과 사명에 매우 우아하고도 고상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동법 제1조는 변호사의 사명을(①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그 사명으로 한다. ②변호사는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사회질서의 유지와 법률제도의 개선에 노력하여야 한다), 제2조는 변호사의 지위를(변호사는 공공성을 지닌 법률전문직으로서 독립하여 자유롭게 그 직무를 행한다)규정하고 있다. 변호사가 사건을 맡고 그 대가로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는 것은 고용계약이 아닌 위임계약의 성격을 지닌 변호사수임계약에 따른 것으로, 변호사는 법률전문가로서의 재량을 가지고 독립하여 자유롭게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변호사사무실은 심부름센터와 다르다. 가령 구속피의자의 변론을 맡은 변호사는 그 피의자의 석방을 위하여 구속적부심과 보석 중 어느 것을 언제 청구할 것인지 등에 대하여 전문가로서의 재량을 가진다. 이것은 마치 환자나 그 가족이 의사에게 수술을 맡긴 이상 수술의 시기 및 구체적인 방법에 대하여는 전문가인 의사에게 맡겨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환자가 의사에게 수술에 관한 재량을 부여하는 것은 의사가 전문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병의 원인을 신속ㆍ정확하게 진단하고, 가장 효과적인 시술로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건강을 회복 시켜 주리라는 신뢰를 전제로 한다.
 
이것은 법률문제로 고통 받는 의뢰인이 상당한 금액을 주면서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의사든, 변호사든 그들이 환자나 고객으로부터 상당한 재량을 부여받는 것은 그들의 전문지식 뿐 만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인 만큼 끊임없는 전문지식의 습득과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변호사를 산다’는 말을 사어(死語)로 만드는 길
 변호사와 그 자격요건이나 공공성의 면에서 비슷한 의사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보다 훨씬 덜한 심부름센터소장에 대하여조차도 의뢰인들이 이들을 ‘산다’고 하지 않는데도 법에서 위와 같이 고상하고도 우아한 표현으로 그 사회적 지위와 공공성을 규정한 변호사에 대하여만 유독 ‘의뢰인은 사고 변호사는 팔리는’ 존재로 표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그것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송사를 하면 삼대가 망한다’, ‘변호사는 허가 낸 도둑’이라는 라는 말 등에서 보듯이 변호사를 선임하는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일반의 관념을 반영한 듯싶다. 이는 ‘기지와 해학, 위트의 백과사전’이라고 평가되는 엠브로스 비어스가 지은 「악마의 사전」에 소송의뢰인을 ‘법에 의하여 빼앗기는 두 가지 방법 중 그 어느 한쪽을 선택한 사람’, 피고를 ‘자기의 시간과 지위를 걸고 자신의 변호사를 위해서 악착같이 재산을 지키려는 참으로 기특한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다.

둘째로 그것은 변호사는 의뢰인으로부터 상당한 금액의 보수를 받는 이상 무조건 당사자의 이익을 극대화할 임무를 띠어야 한다는 일반인의 기대를 담고 있다. 즉 이 말은 ‘변호사는 그의 의무를 이행함에 있어 세계에서 오직 한 사람만을 안다. 그 사람은 그의 의뢰인이다. 의뢰인을 구해내는 것이 그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의무이다. 그것을 위해 어떠한 수단과 편의를 쓰던, 타인에게 어떤 위험과 비용을 초래하든 상관없다. 이러한 의무를 이행함에 있어 그는 타인에게 초래할지 모르는 경고, 고통, 파멸을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변호인의 의무와 애국자의 의무를 엄격히 구분해야 하며, 그로 인한 결과의 무모함을 무릅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조국을 혼란에 빠뜨리게 되는 결과에 이른다 하더라도 그는 그의 불행한 운명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Brougham경(卿)의 말과 일맥상통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면이 지나치면 변호사는 이른바 ‘고용된 총잡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어떻든 변호사로서는 그렇게 달갑잖은 ‘변호사를 산다’라는 속된 말을 현재와 같이 전국민이 실감나게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과거의 언어로 만드는 길은 오로지 개개의 변호사가 변호사법에 규정한 공공성과 사회적 사명에 충실함은 물론, 법률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자신을 구해줄 법률전문가라는 이유로 보내는 소송의뢰인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것임을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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