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변 칼럼

변호사라서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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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강도살인사건 무죄변론기①
 
만약 내가/아픈 마음 하나 달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만약 내가/한 생명의 아픔 덜어 줄 수 있거나,/괴로움 하나 달래 줄 수 있다면,/기진맥진 지친 울새 한 마리/둥지에 다시 넣어 줄 수 있다면,/나 헛되어 사는 것 아니리.
-에밀리 디킨슨
 
 
글머리에
실전 강도살인사건 무죄변론을 통하여 나는 법조인으로서의 더 없는 자부심과 보람을 느꼈다. 나는 본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한 변호인으로서, 강도 살인범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검찰 구형대로라면 자칫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했던 한 선량한 시민에 대한 변론과정을 소상하게 밝히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최근의 법조비리와 대법원장의 변호사 폄하 발언에도 불구하고, 변호사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여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그 이념으로 하는 형사사법절차의 한 축을 당당하게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실증(實證)하고자 한다.
 

사건수임경위
거제로 변호사 사무실을 이전 개업한지 한달 남짓 된 2004년 10월초 어느 날, 한 젊은 부인이 친정어머니, 어린 아들과 함께 찾아와 상담을 요청하였다. 그때가 점심시간인데다 마침 멀리서 온 친구와 같이 몇 시간이 걸리는 출장을 가기로 되어 있어 ‘오늘은 시간이 나지 않으니 다음에 오라’고 한 다음  거의 퇴근 시간 무렵에 사무실에 돌아와 보니 그 부인이 그대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무장의 보고에 의하면 ‘내일 오라’고 하여도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급한 사정이 있다’고 하면서 내가 돌아 올 때까지 다섯시간 이상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연인 즉, ‘남편이 강도살인의 누명을 쓰고 거제경찰서에 구속되어 있으니 그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것이었다.
 
 
거제경찰서에서의 첫 대면
그 다음날 거제경찰서에 피의자 접견을 갔더니 평소 안면이 있던  수사과장이 ‘증거도 명백하고 범인이 뻔한데 피의자가 극구 부인하고 있으니 잘 설득하여 자백 시켜달라’고 하였다. 변호인 접견실에서 본 피의자의 첫마디는 ‘너무 너무 억울하니 거짓말 탐지기를 태워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본건과 같은 강도 살인사건은 법정형이 사형과 무기징역 밖에 없고, 따라서 일반 사건과 달리 타협이 있을 수 없다. 당신이 진정 죄가 없다면 끝까지 다투어 무죄판결을 받아야 하지만 죄를 지었다면 지금이라도 인정하고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관용을 받도록 하자’고 하였으나 피의자는 ‘저는 너무나 억울하니 끝까지 다투어서 반드시 무죄를 받도록 하여 달라’고 간청하였다.
 
피의자를 약 10분 정도 만나보니 우선 그의 외양이 전혀 강도살인범의 모습이 아니었다.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으며, 얼굴은 창백할 정도로 하얀 색인데다 체격은 왜소하고, 특히 눈망울이 아주 착해 보였다. 어린 시절 몰고 다녔던 소의 눈처럼! 범행동기 면에서도 전과도 없는 택시기사가 승객을 상대로 단돈 22만원의 합의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강도살인의 범행을 저지른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경찰은 염색체감식결과 범인임이 틀림없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수사단계라 구속영장 범죄사실 정도 밖에는 수사기록에 접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다만 창원지검 검사시절 「진해택시기사 아내살해사건」을 많은 의심스러운 정황에도 불구하고 증거부족으로 무혐의 처리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하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경찰서 문을 나왔다.
 
 
사건의 개요 및 처리경과
거제택시 기사 K가 2004년 8월 5일 새벽 하청 실전 매립지에서 승객을 살해하고 금품을 강취하였다는 혐의로 같은 해 10월 4일 구속되었다. 그는 범행을 극구 부인하였으나 거제경찰서는 변사체로 발견된 피해자인 다방종업원 H모 여인의 손톱 밑 혈흔에 대한 Y염색체가 K의 구강상피세포의 것과 같다는 이유로 K를 범인으로 단정, 구속영장을 신청하였고,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은 위 유전자감식결과를 결정적인 증거로 보고 즉각 구속영장을 청구,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검찰은 K에 대하여 사형을 구형하였고,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은 2005년 4월 1일 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 이에 대하여 검찰과 변호인이 모두 항소하여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항소심인 부산고등법원은 2005년 7월 27일 K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고, 이에 대하여 검찰이 상고하였으나 2006년 7월 7월 대법원에서 검찰의 상고를 기각, 위 무죄판결이 확정되었다. 피고인이 구속 된지 1년 9개월 만이었고, 본건이 발생 된지 1년 11개월 만이었다. 
 
 
일생일대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
항소심 판결일인 2005년 7월 27일 10시부터 휴대폰을 켜 놓고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10시 30분이 되어서야 전화가  왔다. K피고인 아내의 전화번호가 찍혔다. 그러고도 한동안 말이 없다가 흐느끼는 소리부터 들렸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또 다시 잘못되었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변호사님! 무죄랍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나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더한 행복을 느꼈다. 그로부터 1시간이 채 안되어 부인의 전화로 K피고인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변호사님, 무죄받고 풀려나서 집에 가고 있습니다.’ 판결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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