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변 칼럼

검찰과 역지사지(易地思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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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강도살인사건 무죄변론기③
 
어느 전직 법무장관의 출감(出監)의 변(辯)
몇 년 전 옷로비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석방된 김태정씨는 ‘검사들이 이럴 줄 몰랐다!’고 내뱉었다. 그는 구속되기 불과 얼마 전까지 검찰총장을 거쳐 법무장관을 지냈던 분으로 검사생활을 30년 이상 한 분이다.
 
그런 분조차도 자신이 직접 후배검사로부터 피의자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나서는 ‘검사들이 어떻게 직전 법무부 장관인 나에게까지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진술거부권을 무시하고 진술을 강요하며, 회유할 수 있는가’라는 취지의 항변을 한 것이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관념적으로 이해하기는 쉬우나 실행하기는 지난한 것임을 알려주는 사례이다. 
 
 
검찰, 검사동일체의 원칙과 조직원인 검사의 열정으로 돌아가는 조직
나는 본 사건을 담당한 1년 9개월간 불가피하게 검찰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새삼 많은 것을 느꼈다. 우선 검찰이 대단한 조직임을 실감하였는바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검찰은 말 그대로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철저히 지켜지는 조직임을 실감하였다. 통영지청 담당검사의 ‘구속영장청구-구속기소-사형구형’이라는 결정이 1심법원의 무기징역선고, 항소심의 무죄판결에도 불구하고 최종심인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각급법원에 대응하는 전 검찰조직을 통하여 전혀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유지된 것이다.

둘째, 본 사건 담당검사는 내가 과연 검사시절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였는지 되돌아보게 할 정도로 대단한 열정과 패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본 사건의 쟁점인 ‘Y염색체 감식결과의 증명력’을 입증하기 위하여 유학중인 동기 변호사를 통하여 미국의 사례까지 입수하여 법원에 제출하였고, 1심에서 무기징역의 유죄판결을 받았음에도 그 형이 가볍다하여 항소, 부산고등법원까지 직접 출정하여 공소유지를 하였고, 항소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자 무려 95장이나 되는 상고이유서를 작성하여 대법원에 제출하였다.
 
 
그래도 남는 아쉬운 점, 검찰의 객관의무위반
본건에 대한 검찰의 대응을 지켜보면서 느낀 아쉬운 점 또한 없지 않다.
첫째, 검찰은 변호인의 거짓말탐지기 조사의뢰를 거절하였다. 거제택시기사 K가 검찰에 송치되어 수사중일 때 하도 억울하다고 하여 나는 변호인으로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하였다가 담당검사로부터 한마디로 거절당하였다. 뿐만 아니라 ‘검사출신 변호사라는 분이 다 아시면서 그런 말을 하십니까? 거짓말탐지기는 무혐의 할 때 태우는 것 아닙니까!’라고 면박까지 당했다. 
 
당시는 수사기록을 볼 수 없던 터라 ‘꼼짝 못할 결정적인 증거가 있겠거니’하면서 물러 설 수밖에 없었는데, 기소된 뒤 3천장 이상 되는 수사기록을 정사한 후 나는 아연했다. 그 두꺼운 수사기록 가운데 직접증거는 하나도 없고 ‘K가 범인일 수도 있다’는 정도의 정황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닌가! 대검찰청은 바로 이러한 경우, 즉 ‘피의자 등 사건관계인이 자신의 진술의 진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요청하고 그 요청에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검사를 의뢰하여야 한다’고 예규로 못박고 있다(「심리생리검사규정」 제7조 제3호). 결국 검찰은 스스로 정한 예규를 위반한 셈이다. 

둘째, 본건 담당검사는 공소유지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법조인으로서 금도(襟度)를 넘는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는   상고이유서에서 ‘거제 자동차극장에서 옥포 에드미럴호텔까지 택시로 15분에 갈 수 있다는 취지의 수사경찰관의 1심 증언에 대하여, 거제출신으로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변호사가 1심에서는 아무런 항변을 하지 못하다가 항소심에 와서야 위 극장에서 호텔까지는 최소한 25분이 걸린다는 새로운 주장을 하여 항소심이 이를 받아 들였는데, 그것은 그런 허위주장을 1심에서 했다가는 그 사정을 아는 1심법원이 현장검증을 할 것도 없이 거짓임이 곧 탄로 날것이 명백하였기 때문이며, 결국 변호인이 거제지역사정을 잘 모르는 부산고등법원을 속여 무죄판결을 받아낸 것’이라는 취지의 표현을 한 것이다. 나는 이에 대한 답변서에서 ‘위와 같은 금도를 넘는 표현에 대하여 같은 법조인으로서 아연할 따름’이라고 썼다. 

셋째, 검찰은 상식에 반하는 제의를 하여 스스로의 약점을 드러내었다. 본건에 대한 1심 구속기간(6개월)이 한 달도 채 안 남은 시점에 담당검사는 K피고인에 대한 정신감정유치를 법원에 요청할 테니 양해해달라고 했다. 구속기간 때문에 본건 1심 선고가 검찰인사 직전 있을 수밖에 없는데, 만약 무죄가 나면 인사에 좋을 것이 없으니 감정유치요청을 하여 그 기간동안 구속기간진행을 정지시켜 인사발령이후에 선고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나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에 하나 있을 지도 모르는 무죄판결로 받을 수 있는 인사상의 불이익을 막기 위하여 한번도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의 항변을 한 적 없는 멀쩡한 피고인에 대하여 정신감정요청을 검찰이 자청하여 제의할 수 있는지! 나는 이를 단호히 거절하였고, 아울러 ‘검찰이 본건에 대하여 상당히 자신이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찰, 타화상(他畵像)도 그려 볼 줄 알아야
검찰의 위와 같은 여러 잘못은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객관적인 기관임을 지향해야 하는 검찰이 그 객관의무를 위반한데 있다. 검찰의 구성원인 검사에게는 수사의 주재자로서 죄지은 자를 벌하는 임무 뿐 아니라, 공익의 대표자로서 죄 없는 자가 억울하게 처벌받는 일이 없도록 배려하여야 할 임무 또한 있다. 전자에 열중하다 보면 후자에 소홀하기 십상이고, 나의 검사시절 또한  위와 같은 과오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고백한다. 내가 친정인 검찰의 과오를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것은, 우리 검찰이 점점 더 사면초가에 빠져 가는 현 상황에서 검찰이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하고 있는데 몰라주어 억울하다’는 아집에서 벗어나 ‘과연 국민들 눈에는 검찰이 어떻게 비칠까’하는 데로 발상을 전환하여 조속히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를 바라는 충정의 발로임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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