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변 칼럼

독일인의 법의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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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검사재직 시절 1년간(1996. 4.~1997. 4.) 독일연방공화국 베를린 외청 파견검사로 유학을 다녀온 적 있다. 이 글은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독일생활의 체험가운데 독일인의 독특한 법의식을 알 수 있는 사례들을 적어 본 것이다.
 
깨알같은 글씨로 10장이나 되는 임대차계약서
필자는 전임검사가 살던 월세아파트를 이어 받았는데 그것은 통일독일의 수도인 베를린 스판다우 구에 있는 17평짜리 아파트였다. 독일로 떠나기 2개월전에 임대차계약서 양식을 집주인으로부터 팩스로 송부 받았는데 그 임대차계약서가 그야 말로 깨알 만한 글씨로 무려 10장이나 되었다.
 
그 중 주요부분이라고 주인이 밑줄 쳐 보내온 부분을 보면, ①임대차보증금은 월세(1,500마르크)2개월분으로 한다 ②금붕어, 참새 및  고양이는 집주인의 동의 없이 키울 수 있으나, 앵무새와 개는 주인과의 면접을 통하여 주인의 동의를 받은 다음 키울 수 있다 ③1주일이상 집을 비울 때에는 열쇠를 제3자에게 맡기고 그 연락처를 주인에게 사전에 알려야 한다 ④집주인은 임차인의 부재시 임대주택의 화재 등 긴급사태시에 임차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도 임대주택안에 들어갈 수 있다 ⑤임대차계약은 계약기간 만료 2개월전에 해지 통보를 하여야 하고, 그 통보지체로 인한 손해가 발생할 경우에는 이를 배상하여야 한다 ⑥임대기간 만료시에 집을 처음 입주시와 같은 상태에서 명도하여야 하고, 그 차이를 보전하기 위한 비용은 임차인이 부담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위 임대차계약의 내용에 동의하면 임차인란에 서명하여 다시 팩스로 보내달라는 주인의 요청도 별도로 기재되어 있었다. 필자는 ‘독일인이 아무리 법을 좋아해도 이렇게까지 하는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별수 없이 서명을 하고 보냄으로써 위 임대차계약은 성립되었다.
 
 
입국심사시의 에피소우드
1996년 4월 20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는데 심사원이 ‘어디 가느냐’고 물어 ‘베를린’이라고 했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못 알아들어 몇 번이나 ‘베를린’을 반복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독일의 국제관문인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 있는 것은 분명하고, 독일의 입국심사원이 그 나라 수도를 모를 리가 없고, 처와 어린 두 아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나만 쳐다보는데, 이것이 어찌 된 것인가?
 
아무리 폭탄주를 먹고 자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시까지 매일 4시간씩 독일어 공부를 하여 치열한 경쟁을 뚫고 독일유학시험에 합격하였고, 입국전 수개월간 독일대학원생으로부터 독일어 회화 과외까지 받았는데, 그 빛나는(?) 독일어 실력은 다 어디 가고, 독일에서 독일공무원을 상대로 그 나라 수도를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왜냐하면 끝까지 못 알아들으면 입국이 안될지도 모르니까!) 혀를 굴려도 못 알아들으니....’
할 수 없이 종이에 ‘Berlin'이라고 썼더니 그제서야 ‘오우, 베을인!’이라고 하면서 도장을 팍 찍어 주었다. 아! 이것이구나. 이론과 실제가 이렇게 다른 것이구나!
 
 
법과 함께 살고 있는 독일인들의 풍경
필자 가족이 살았던 곳은 1963년에 건립된 15층짜리 아파트였다. 주변이 모두 공원같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집앞에 있는 큰 호수에는 하얀 요트들이 떠있고, 집 건너편 작은 호수에는 백조와 오리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그야 말로 그림 같은 곳이었다. 검사생활의 번다함에서 벗어나 모처럼 가족과 함께 집주변
 
을 한가로이 산책을 하면서 그야말로 ‘별천지가 따로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법쟁이는 어디가도 법쟁이 인지, 철저한 독일인들의 법의식을 느끼게 하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끊임없이 목격되었다.(사람은 보아서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것은 우리아파트 현관입구에서 부터였다. 독일에서는 거의 모든 공공기관이나 아파트, 심지어 학교 및 변호사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입구까지도 거의 언제나 잠겨있다.
 
그래서 그곳에 들어가려면, 사전에 예약을 하고 입구에 부착되어 있는 인터폰으로 방문하고자 하는 사무실의 직원과 통화를 하여 그 사무실에서 단추를 눌러주면, ‘철컹’하면서 현관문이 열리게 되어 있다. 그래서 아파트 입주민도 키를 소지하지 않으면 현관에조차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다. 그것도 모자라 현관문에는 큼지막하게 ‘이곳을 무단으로 들어오면 형법상 주거침입죄로 1년이하의 징역이나 벌금에 처합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산보도 당신의 위험부담하에!
집 주변 호숫가의 아름다운 단독 주택 주위를 산보하다보면, 그 오솔길 입구에는 반드시 ‘이곳에 귀하는 자유로이 들어 올 수 있으나, 눈비 올 때는 미끄러워 넘어질 수 있는데, 그 위험은 귀하가 부담해야 한다’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 주택의 주차장 입구 바닥에는 주차금지표시를 해놓고 아울러 ‘이곳에 주차하면 귀하의 차는 귀하의 비용으로 견인된다’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다. 

독일에서는 업무가 아침 8시에 시작된다. 집 바로 옆에 고등학교가 있는데, 수백명의 학생들이 입구에 바글바글 몰려 있다가 8시 직전에야 비로소 문이 열리면서 학생들이 썰물같이  빨려 들어가는 장면을 보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보험 때문이었다. 학교가 가입한 안전보험의 적용시간이 08:00부터라서 학생들은 학교에 아무리 빨리 들어가도 싶어도 보험적용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등교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원칙적으로 운동장에 나가야 되는데 그것도 그 시간에는 보험적용장소가 교실이 아니라 운동장이기 때문이란다. 이러한 예는 수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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