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변 칼럼

다시 법(法)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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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변호인'을 보고

난생 처음 같은 영화를 극장에서 두 번 봤다. 그것도 보름사이에! 두 번 다 안경에 얼룩이 졌다. 영화 「변호인」이다. 최근 들어 눈물이 자주난다. 나훈아 노래 ‘울 엄마’를 들어도, 김광석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를 들어도 그렇다. 남성호르몬이 줄어들고 그 만큼 여성호르몬 비중이 늘어난 탓이라고 아내는 놀려댄다. 그런데 이 영화가 나를 울리는 것은 중년 남성의 생리적 현상 외에 찡한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송강호가 주연한 이 영화는 25년 법조경력이라며 내심 은근히 관록을 자랑하던 내 자신을 부끄럽게 돌아보게 만든다.

 

-본 영화는 실제 인물과 사실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허구임을 밝힙니다.- 이 영화의 시작 화면 자막(字幕)이다. 즉 이 영화는 사실(fact)을 바탕으로 허구(fiction)를 가미한 팩션(faction)이다. 다소 무리한 상황설정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 허물을 치유하고도 남을 만한 감동을 준다. 우선 국밥집 주인 순애의 절절한 한마디 한마디에 가슴이 저민다. 입에 ‘문디’를 달고 사는 순애의 눈빛만 봐도 콧마루가 시큰해진다. 특히 송우석 변호사가 7년전 가난한 고시생 시절 떼먹은 외상값을 갚는다며 돈 봉투를 건네자 순애가 ‘야가 그 문디가? 니 시험 붙었나?’며 반색하면서 내뱉은 ‘자고로 묵은 빚은 돈 말고 얼굴로, 발로 갚는 기다.’라는 대목에서 나의 시야가 흐려졌다. 아내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 때문일 거라고 한다. 자식만 가슴에 묻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가슴에 묻는 것임을 새삼 느낀다. 부산공대 1년생인 아들 진우가 국가보안법위반이라는 조작된 혐의로 끌려가 심한 고문 끝에 허위자백을 하고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 순애가 우석에게 사건을 맡아 달라며 한 ‘변호사 선생님아, 우리 아는 빨갱이 아이다! 이번에 도와주모 변호사님 너거 집에 식모라도 살 란다.’라는 대목에서 서민들이 겪는 억울함은 결국 법의 문제라는 점과 그래서 이들이 기댈 곳은 (판사도 검사도 아닌) 변호사뿐이라는 점을 영화는 잘 묘사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 영화는 고졸출신 변호사 송우석의 치열한 몸부림과 절규(絶叫)를 통하여 법의 문제가 저 멀리 뜬구름 잡는 추상적인 문제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과 이웃의 현실적인 문제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가방끈 짧은 송변호사가 전관예우도, 사건 브로커도 포기하고 자구책으로 부동산등기 전문변호사로 활동하기로 하고 명함을 돌리면서 한 ‘법은 편리하고 가차운 데 있습니다!’라는 대목과 상고출신이라는 점을 특화하여 세무전문변호사로 거듭나면서 명함에 새긴 ‘당신의 소중한 돈을 지켜드립니다!’라는 문구는 ‘법의 이념은 정의’라는 식의 어렵게만 느껴지는 법철학적인 제반문제들을 서민들의 입장에서 쉽게 풀이한 것으로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다. 법은 마치 공기와 물같이 우리주변에서 우리를 살리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라는 점, 우리가 개인이나 국가, 또는 공권력으로부터 억울함을 당했을 때 법이 우리의 생명과 자유, 명예와 재산을 지켜주는 소중한 도구의 역할을 한다는 점, 그러한 역할은 법조인의 소송활동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을 이보다 가슴에 와 닿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아가 영화는 정의(正義)로운 세상을 지향하는 법전(法典)속의 법이 현실세계에서 극히 불의(不義)한 권력유지를 위한 폭압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과 그런 불의한 세상은 몇 번의 데모로 바뀔 만큼 결코 말랑말랑하지 않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5공 전두환 정권의 국정지표가 ‘정의사회구현’이라는 사실이 이 점을 웅변한다. 영화는 5공의 정권유지를 위해 서울대 추천도서인 E. H. Carr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를 불온서적으로, 저명한 역사학자이며 영국 외교관인 저자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는 용공조작이 정의와 인권보장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지배하는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생생히 묘사한다. 그 사례를 통하여 법전속의 추상적 정의가 권력에 맹종하는 고문경관, 공안검사, 공안판사의 손을 거쳐 구체적인 부정의로 바뀌어 선량하고 성실한 대학생들을 빨갱이로 몰아가는 과정을 고발한다.

 

그러면서도 법이 지향하는바 정의로운 세상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을 영화는 세상물정 모르는 한 바보의 힘겨운 몸부림을 통하여 분명하게 보여준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입니까? 국보법 사건은 무죄가 없다던데!’ 라며 낙담하는 진우에게 우석은 다짐한다. ‘니가 말하지 않았나 진우야, 세상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하지만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기고 계란은 아무리 약해도 살아있는 기라고 말이다. 계란은 언젠가 바위를 뛰어 넘을 기라고...! 난 절대 포기 안한다!’라고. 또한 우석은 ‘당신이 국가보안법을 알아? 이 빨갱이 새끼야!’라며 대드는 고문경관 차동영에게 핏발선 눈으로, 쉰 목소리로 절규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2항), 따라서 국가는 곧 국민이다!’라고. 우석의 이 고독한 외침을 통하여 법조인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 헌법조항이 비로소 법전 속에서 잠을 깨고 꿈틀꿈틀 기어 나와 순애의 가슴 속에서, 나아가 영화를 본 천만관객 가슴속에서 ‘우리의 착한 아들을 불의한 권력으로부터 지켜주는 등불’로 다가오는 것이다. 아내 몰래 다시 한 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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