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변 칼럼

박완서의「한 말씀만 하소서」를 읽다

관리자 0 1507

세월호 참사에 부쳐...

 

‘참척(慘慽)’이란 말이 있다.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을 뜻한다. 작가 박완서는 1988년 남편을 잃은 지 세 달 만에 외아들을 잃었다. 이 책은 작가가 자식 잃은 참척의 고통과 슬픔을 절절하게 그려낸 내면일기이다. 작가가 아들을 잃고 부산 큰 딸집에 가 있는 동안 겪은 고통과 분노, 절망감에 내뱉은 신에 대한 저주와 항의, 그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눈물겹게 묘사한다. 나는 오로지 어른들의 잘못으로 봄꽃보다 이쁜 우리 아이들이 차가운 진도 앞 바다에서 꽃잎처럼 스러지는 참상을 목도하면서 책장 깊숙이 박혀 있던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어 보았다. 참척을 먼저 겪은 작가의 피맺힌 외침이 같은 처지에 있는 이 땅 수많은 ‘박완서’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상을 당한 이에게 정중한 조문을 하는 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도덕입니다. 그러나 참척을 당한 에미에게 하는 조의는 그게 아무리 조심스럽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위로일지라도 모진 고문이요, 견디기 어려운 수모였습니다.’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참아줬지만 88올림픽이 여전히 열리리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내 자식이 죽었는데도 고을마다 성화가 도착했다고 잔치를 벌이고 춤들을 추는 걸 어찌 견디랴. 아아, 내가 만일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만.’

 

‘예전 우리 시골에선 자식을 앞세운 에미한테 자식을 잡아먹었다고 말했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 소리가 끔찍해 소름이 끼쳤는데 지금 생각하니 나한테 해당하는 소리가 아닌가. 나야말로 자식을 잡아먹은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줄창 먹지 않고도 배부를 수가 없고, 먹지 않았는데도 수족을 움직이는데 지장이 없을 수가 없지 않은가.’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초월적인 존재가 정말 있다면 내 아들의 생명도 내가 봉숭아를 뽑았듯이 실수도 못 되는 순간적인 호기심으로 장난처럼 거두어간 게 아니었을까? 하느님 당신의 장난이 인간에겐 얼마나 무서운 운명의 손길이 된다는 걸 왜 모르십니까. 당신의 거룩한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이렇게 막 가지고 장난을 쳐도 되는 겁니까.’

 

〈인생은 풀과 같은 것, 들에 핀 꽃처럼 한번 피었다가도 스치는 바람결에도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 수 없는 것.〉(『시편』, 15-16) ‘주여, 그렇게 하찮은 존재에다 왜 이렇게 진한 사랑을 불어넣으셨습니까.’

 

‘아침에 눌은 밥을 폭 끓인 걸 한 공기나 먹었다. 균열이 생긴 것처럼 메마른 혀와 식도에 상쾌한 통증을 느꼈다. 구수한 냄새도 좋았다. 딸이 눈을 빛내면서 좋아했다. 이렇게 해서 차츰 먹고 살게 되려나 보다.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이내 그럴 수 없다는 반발이 치밀었다. 자식을 앞세우고도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처넣은 에미를 생각하니 징그러워서 토할 것 같았다. 격렬한 토악질이 치밀어 아침에 먹은 걸 깨끗이 토해냈다. 그러면 그렇지 안심이 되면서 마음이 평온해졌다. 정신과 육체의 생각이 일치할 때의 안도감 때문인지 낮잠을 좀 잘 수가 있었다.’

 

‘주님, 당신은 과연 계신지, 계시다면 내 아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 받아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말씀만 해보라고 애걸하리라.’

 

‘어려서 무서운 꿈을 꾸다가 흐느끼며 깨어난 적이 있다. 꿈이었다는 걸 알고 안심하고 나서 잠들려면 옆에서 어머니가 부드러운 소리로 말씀하셨다.  “얘야 돌아 눕거라. 그래야 다시 못된 꿈을 안 꾼단다.” 돌아 누움, 뒤집어 생각하기, 사고의 전환, 바로 그거였어. 앞으로 노력하고 힘써야 할 지표가 생긴 기분이었다.’

 

‘참척을 겪은 기막힌 애통과 절망은 당연히 에미의 목숨을 단축시킬 줄 알았다. 살고 싶지 않은 게 조금의 거짓이 아닌 이상 육신은 의당 거기 따라주려니 했다. 그러나 내 육신은 내 마음과는 별개의 남처럼 끼니때마다 먹고 살고 싶어하는 게 아닌가. 나는 내 육신에 대해 하염없는 슬픔과 배신감을 느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몇 날 며칠을 밤이나 낮이나 주님을 찾아 대들고 몸부림쳤었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 한 말씀만 하시라’고 애걸복걸도 해보았다. 그러나 주님은 끝내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어쩌면 나직하고 그윽하게 뭐라고 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늦게 난 철처럼 슬며시 왔다. 그래, 분명히 뭐라고 그러셨을 거야. 다만 내 귀가 독선과 아집으로 꽉 막혀 못 알아들었을 뿐인 것을. 하도 답답해서 몸소 밥이 되어 찾아오셨던 거야. 우선 먹고 살아라 하는 응답으로. 그렇지 않고서 그 지경에서 밥 냄새와 밥맛이 그렇게 감미로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 나는 조금씩 다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새로운 소설도 썼고, 중단했던 장편 연재도 다시 시작해 마무리를 지었다. 다시 글을 쓰게 됐다는 것은 내 아들이 없는 세상이지만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는 증거와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안다. 내 아들이 없는 세상도 사랑할 수가 있다니, 부끄럽지만 구태여 숨기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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