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변 칼럼

형사사법과 흠흠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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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조사 경찰관의 직무유기사건
필자는 초임검사 시절 교통사고 조사경찰관을 직무유기혐의로 인지ㆍ구속한바 있다. 임관 된지 3개월도 채 안된 초임검사의 형형한 눈빛으로 얇은 수사기록의 이면을 파헤치려는 열정이 결실을 맺었던 것인가. 솜공장 주인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보행하던 고등학생을 치어 2주간의 타박상을 입게 한 단순 교통사고 사건이 합의되어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송치된 수사기록을 검토하던 중 이상한 점을 찾아내었다.
 
피해자인 학생이 처음에는 ‘오토바이에 치어 넘어져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데 오토바이 운전사가 오히려 야단을 치고 가버렸다’고 진술하였다. 그런데 합의가 되자 피해자는 ‘오토바이 운전사가 다친 데는 없는지 세심히 확인하여 별 상처가 없음을 확인한 연후에 자리를 떴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먼저 피해자를 불러 진술을 번복한 경위를 추궁하였더니 합의가 되자 담당경찰관이 그렇게 진술을 번복하라고 은근히 회유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토바이 운전사를 즉각 소환하여 같은 내용의 자백을 받고 동인을 뺑소니 혐의(특가법상의 도주차량)로 먼저 구속하였다. 그 다음 담당경찰관을 소환하여 자백을 받아 동인을 특가법상의 직무유기혐의로 구속한 것이다.
 
 
위 사건처리에 대한 반성적 회고
필자는 당시 위 경찰관이 틀림없이 뇌물을 받고 뺑소니 사건을 단순교통사고로 은폐한 것으로 확신하였다. 그래서 일단 증거가 확보된 범죄사실로 오토바이 운전자와 위 경찰관을 우선 구속한 다음 엄중 추궁하면 반드시 금품수수의 점을 밝혀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러나 위 예상은 어긋났다. 구속후 20일간을 엄중 추궁하였으나 뇌물수수의 점을 밝혀 내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과연 이들을 구속한 것이 적정한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구속당시에는 교통경찰관이 돈도 한푼 안 받고 뺑소니 사범을 단순 교통사고로 조작할 리는 절대로 없다는 것이 필자의 확신이었으나 구속후 주변을 정밀히 조사하여 보니 금품을 주고받을 정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선 오토바이 운전사는 혼자서 솜공장을 운영하면서 배달을 가다가 본건 사고를 낸 것이었는데 만약 본건이 뺑소니로 처리되면 운전면허가 취소되어 생계가 막연해 지니 제발 면허를 살려달라고 읍소한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 조사 경찰관의 선친도 솜공장을 경영하여 어렵게 그를 고등학교까지 마치게 해 주었는데, 피해자의 상해부위도 별것 아니고 합의도 되었으니 선친과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가난한 솜공장 주인의 ‘면허만이라도 살려 달라’는 눈물겨운 호소를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인정에 못 이겨 피해자에게 진술 번복을 유도한 것이었다.
 
국 그 경찰관은 본건으로 집행유예의 형을 받고 파직되었고, 뒤에 확인해보니 인천 부두에서 시멘트 하역이라는 막노동을 하고 있었다. 위 경찰관을 구속하였을 때만 해도 초임검사가 사건을 조작한 경찰관을 인지ㆍ구속하였다 하여 검사장으로부터 공식석상에서 칭찬도 받고 지역신문에 보도도 되어 기고 만장하였는데 위 사건은 두고두고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은 백번 잘못이나 인정에 못 이겨서 그렇게 된 것이지 절대로 돈을 받고 한 것은 아니니 3개월된 아들을 봐서라도 용서해달라’고 읍소하던 그 경찰관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과연 당시 필자가 요행히 걸려던 경찰관을 구속하는 건수를 올려 상급자의 칭찬을 받으려고 무리하게 사건을 처리하지 않았는지, 위 경찰관의 범행동기가 금품수수가 아니라 인정에 치우친 나머지 공직자의 본분을 잠시 망각한 정도에 불과한 것임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도 과연 그를 구속했을 것인지 심히 의문이다.
 
 
변호사가 된 뒤에야 비로소 읽어 본 흠흠신서
위 사건을 처리한지 십 수년이 지나 필자는 변호사가 되었다. 변호사가 되고 보니 검사의 권한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실감하였다. 변호사인 필자에게 상당한 보수를 주면서 매달리는 당사자의 법률적 운명이 검사의 도장하나에 갈려지는 것을 체험하면서 필자가 검사시절에 처리했던 그 수많은 사건의 당사자들이 필자가 매일 업무로서 처리하는 결정에 목을 매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된 것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전부터 책장에 꽂혀있던 다산 정약용의 흠흠신서(欽欽新書)를 꺼내 들었다. 그 서문을 읽고 필자는 전율하였다.
 
그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오직 하늘만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도 또 죽이기도 하니 사람의 생명은 하늘에 매여 있는 것이다(惟天生人而死之 人名繫乎天). 그런데 목민관이 선량한 사람은 편안히 살게 해주고, 죄지은 사람은 잡아다 죽이는 것이다. 이는 하늘의 권한을 드러내 보이는 것일 뿐이다.」그렇다! 내가 검사로서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수행한 업무는 경우에 따라 당사자나 이해관계인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일’이었고, 그 일은 하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내가 대신하여 행한 것이었다! 과연 나는 그동안 검사의 직무를 위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수행하였던가? 다산의 준열한 외침은 계속된다.
 
「사람이 하늘의 권한을 쥐고서 삼가고 두려워할 줄 몰라 털끝 만한 일도 세밀히 분별해서 처리하지 않고서 소홀하게 하고 흐릿하게 하여, 살려야 되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또는 죽여야 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태연히 편안하게 지낸다. 이는 매우 큰 죄악이다.」과연 내가 검사의 직무를 수행한 동안 죄 있는 자를 놓아주거나 죄 없는 자를 처벌한 잘못은 없었던가? 또한 변호사로서 정성의 부족과 게으름, 무능력으로 위와 같은 잘못을 방기하지 않았던가? 내가 진작에 위 구절을 읽고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면 위 경찰관 사건을 위와 같이 처리하지는 않았으리라! 다산은 위 책의 서문을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흠흠(欽欽)이라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삼가고 또 삼가는 것【欽欽】은 본디 형벌을 다스리는 근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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