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변 칼럼

「MBC PD수첩 사태」를 보고

관리자 0 1366
검사의 3가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필자의 검사 재직기간 중 수 없이 들어온 말 중에 ‘불가근불가원’이라는 말이 있다. 검사가 너무 가까이 해서도 안 되고(不可近), 너무 멀리 해서도 안 되는(不可遠) 3부류가 있으니 첫째가 경찰, 둘째가 검찰 일반직, 셋째가 기자라는 것이다.
 
이 세 부류는 검사의 직무상 불가피하게 접촉해야하는 점에서 너무 멀리 해서 소원해져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가까이 해도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경찰은 검사와 비록 상명하복관계에 있다 해도 원활한 업무수행을 위해서는 다소의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지만 그래도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영(令)이 선다’는 것이고, 검찰 일반직은 같은 검찰 식구지만 결코 검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어느 정도 인간적으로 보듬어 주어야 하지만 그래도 그 본질적 한계로 인하여 양자간에는 화학적 결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기자는 검찰업무 홍보의 필요상 인간적으로 가까이 지낼 필요가 있지만 특종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위와 같은 인식이 일면의 타당성은 있다고 본다.
 
 
기자라는 직업의 속성
필자의 대학후배중에 C기자가 있다. 보통의 법대생들이 법조계 진출을 목표로 고시공부를 하는 것과 달리 그는 대기자(大記者)의 꿈을 안고 졸업과 동시에 모 방송사에 입사, 수습과정을 마치자마자 이례적으로 정치부로 배치되었다. 보통의 초임기자들이 사회부로 배치되는 것과 달리 C기자가 정치부로 배치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C기자의 부친이 고건 전 총리에 필적할 만한 행정의 달인으로 평가받아 여러 정권에 걸쳐서 장관 및 부총리직을 맡은 바 있는 호남출신 관료의 대부였던 것이다.
 
그래서 방송사 입장에서는 C기자를 바로 그의 아버지에 대한 전담 마크맨으로 지정하여 아버지의 동태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기기 위하여 정치부로 배속한 것이었다. 개각(改閣)시기에는 C기자에게 특별휴가를 주어 출근도 하지말고 집에서 아버지가 어느 부처 장관으로 내정되었는지를 알아내어 보고토록 시켰다는 것이다. 행정의 달인인 C기자의 아버지가 그 술수에 넘어갈 분이 아니었다. C기자가 청와대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엿듣기 위하여 귀를 쫑긋 세우고 며칠간 잠복근무를 하였지만 휴대폰도 없던 그 시절에 C기자의 아버지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산보하는 척 집을 나와 삐삐와 공중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은 것이었다.
 
그래서 C기자는 한번도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얼마 안되어 사회부 법조팀으로 전보되었다.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특종을 위한 기자 및 언론사의 노력은 일반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눈물겨운 것이다. 특종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비는 종군기자를 보라!
 
 
MBC PD 수첩 사태에서 느끼는 소회(所懷)
‘특종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던지 한다’는 기자의 속성은 최근의 MBC PD 수첩사태에서도 잘 드러난다. 줄기세포 연구에서 의문의 여지없이 세계를 선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성과에 대하여 재검증을 하겠다는 당찬 기획의도와는 달리 MBC 문화방송 전체를 위기로 내몰고, 나아가 한국의 생명과학계를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는 최근의 PD 수첩사태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위와 같은 기자의 속성을 교묘히 이용한 악의적 제보자와 그에 장단을 맞춘 언론사의 한건주의가 빚어낸 비극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러한 비극적 사태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아래와 같은 교훈을 되새겨본다. 첫째 정당한 목적은 정당한 수단에 의해서만 달성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의도가 순수하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정당하지 못한 수단을 사용한다면 당초의 동기마저 의심받고 목적달성은 불가능해진다.
 
둘째 비전문가가 의욕만 앞선 채 전문영역에 대하여 섣불리 재단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는 것이다. 황우석 교수팀이 줄기세포배양 분야라는 고도의 전문영역에 대하여 ‘하늘을 감동시키자’는 각오로 연구실의 달력을 月火水木金金金으로 표시해놓고 주말도 없이 연구에만 매달려 이루어 낸 세계적 성과에 대하여, 전혀 문외한인 기자가 함부로 예단을 갖고 달려드는 것은 돈키호테보다도 더 무모하다 할 것이다.
 
이것은 검사출신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는 집권여당이 그들이 전혀 모르는 검찰을 개혁하겠다고 나서면서 국가의 사법질서의 근간을 바꾸는 법안을 함부로 내는 것과 다름없다 할 것이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라는 속담이나 ‘그 직위에 있지 않다면 그 직위에서 담당해야 할 일을 꾀하지 말아야 한다(不在其位 不謀其政)’는 옛 성현의 말씀은 본건에 더 없이 타당하다.
 
셋째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회 지도층일수록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구습에만 매달려 있으면 본인에게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세상물정에 대하여 누구보다 통달하여 특별히 모르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특별히 아는 것도 없는’ 기자가 고도의 과학적 지식이 필요한 전문분야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오로지 연구에만 전념하느라 세상물정 모르는’ 연구원에 대하여 으르고 기만하고 협박하는 등으로 의도하는 진술을 받아내려고 시도한 것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새천년을 맞은 지도 벌써 수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구시대를 달려 왔던 막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과거의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본인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에 아픔을 준 사례는 본건 외에도 수 없이 많다. 조직폭력배 소탕이라는 나름대로의 소명의식으로만 무장한채 무리한 수사를 하다가 수사대상자가 사망하는 바람에 고문치사죄로 징역3년의 실형을 받은 ‘서울지검 강력부의 H검사 사건'이나, 억대의 불법선거자금을 뿌려 남편을 당선시켜 놓고도 정작 본인은 1년이상 도피생활을 하다가 궐석재판으로 1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최근에 항소심 법원에 출석하여 법정구속되어 그 남편의 의원직 마저 상실될 위기에 처해 있는 모 국회의원 부인의 선거법위반 사건 등도 마찬가지다.
 
‘기자는 으레 그렇겠지’ 라는 말에 담긴 오랜 관행과 그에 대한 일반의 묵인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과, 나아가 기자, 정치인, 법조인 등 이른 바 사회지도층에 대하여는 더 엄격한 윤리적 잣대가 적용되는 시대가 확연히 도래했음을 필자는 본 사태를 통하여 절감한다.
0 Comments
포토 제목